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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강. 신앙의 자유와 제국 교회

지난 주 강의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에 일어난 커다란 변화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그리스도교가 탄생했고, 어떻게 주변 인근 지역으로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는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시 정리를 좀 해드리면, 기원후 70년경에 로마 제국에 대항한 유다의 독립 전쟁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고,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 되면서, 모든 유다인들이 이스라엘 땅에서 완전히 추방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예루살렘에 있었던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도 예루살렘을 떠나서 본격적으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더군다나, 기원후 90년, 얌니아에서 있었던 유다인들의 최고 지도자 회의에서, 그동안 유다교의 한 종파로 여겨졌던 그리스도교를 완전히 다른 종교로 규정 짓고, 유다교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와 분리되어서 새로운 종교로 독립하게 되는 거죠. 이때부터 유다인들에게 배척도 심하게 당합니다.

당시 주변 인근 지역은 모두 헬레니즘 문화가 대세였습니다. 헬레니즘 문화와 접하면서, 그리스도교가 급속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어를 사용했던 헬레니즘 문화의 사람들은 신들의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들이었어요. 

태양신 제우스, 제우스 신의 아내 헤라, 바다의 신 포세이돈, 미의 여신 아프로티테, 술의 신 바카스 등등 엄청나게 많은 신들과 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신들의 세상인 올림푸스에 열두 명의 신이 살고 있었고, 그 신에게서 태어난 많은 자식들이 또 있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엮은 것이 유명한 ‘그리스 신화’죠. 

이렇게 신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 이야기는 엄청난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어요.

“하느님의 아들이 한 여인의 몸에서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났고, 그 아기가 자라서 세상의 구원자가 되었다. 그런데, 세상은 그 구원자를 알아보지 못했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그런데, 죽었던 그 구원자가 다시 부활해서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직접 본 사람이 한 두사람이 아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는다.” 

이런 흥미진진한 인류 구원 이야기가 헬레니즘 문화에 사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호기심과 관심을 끌게 됩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교가 급속도로 헬레니즘 문화 속으로 퍼져나가게 되요. 

특히, ‘그리스도의 사랑’인 ‘아가페’적인 사랑에 굉장한 관심을 갖습니다. 

육체적인 사랑을 ‘에로스’라고 하죠. 그리고, 진리에 대한 사랑을 ‘필리아’라고 합니다. 조건없는 신적인 사랑을 ‘아가페’라고 해요. 사랑의 최고의 경지예요. 이 단어들이 모두 헬레니즘 시대에 만들어진 고대 그리스어입니다. 그리스도의 ‘아가페’적인 사랑,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신적인 사랑’이 헬레니즘 문화를 강타하는 새로운 사상으로 등장하는 거죠.

철학과 신학에 관심이 많았던 당시 학자들이 그리스도교 사상에 대해서 연구도 활발하게 합니다. 그래서 여러 이단적인 학설들도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대표적으로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고 신성만 강조하는 ‘영지주의자’들이 생겨나고, 반대로 예수님의 신성은 부정하고 인성만 강조하는 ‘에비온파’들이 생겨납니다. 이런 이단들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정립 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그래서 신앙을 요약하고 정리한 ‘사도 신경’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 학설과 해석이 난무하게 되니까, 교회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사도들로 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고 전수받은 사람들의 가르침이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진리라는 것을 공인하기 위해서, 사도로부터 계승된 것만을 교회의 최고 권위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도 계승권’이 확립되는 거죠. 이 ‘사도 계승권’을 이어받은 교황과 사제직이 교회의 교계 제도로 형성되는 겁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목격했던 목격 증인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생애를 문서로 기록해서 남겨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 되고, 이때 복음서가 집필됩니다. 처음에는 유다인에 의해서 히브리어로 쓰여진 복음서가 헬레니즘 문화로 전파되면서, 그리스어로 번역이 됩니다. 그리스어 번역본과 더불어 더 급속도로 복음이 헬레니즘 문화 속으로 퍼져나가게 되죠.

특히, 바오로 사도가 복음 전파에 엄청나게 놀라운 업적을 이룹니다. 안티오키아, 에페소, 고린토, 필립비, 데살로니카, 그리고 로마까지 방대한 지역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해요. 바오로 성인이 방문했던 지역에 새로운 공동체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바오로가 그 공동체 신자들에게 ‘사목 서한’을 보내죠. 그 편지들을 모아 놓은 것들이 신약 성경의 ‘바오로 서간들’ 입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에페소인들, 데살로니카인들, 필립비인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신약 성경에 수록이 되어 있죠. 모두 바오로 사도가 각 공동체에 보낸 편지 입니다. 

이렇게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교가 새로운 형태와 제도를 확립하고 성장하기 시작하지만, 로마 제국으로부터는 엄청난 박해를 받습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 사상에 반대하고, 로마인들이 숭배하는 여러 신들도 부정합니다. 그리고 전쟁도 반대하고 군대 징집에도 반대합니다. 이렇듯 로마의 정치, 사회 질서에 대항하면서 엄청난 박해를 받게 됩니다. 

네로 황제 때부터 박해가 대대적으로 시작되는데, 그때 박해 받은 이유는 사실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었어요. 네로 황제 때, 로마 시내에 엄청난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로마 시내가 거의 다 불에 타서 잿더미로 변하죠. 

로마 시민들은 이 화재의 주범으로 네로 황제를 거론하면서 황제를 비난 합니다. 결국 네로 황제는 화재의 진짜 범인을 찾아내서 책임을 물어야 했습니다. 

당시 로마 시내가 총 14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그 중에 11개 구역이 모두 불에 탔대요. 그런데, 불이 나지 않은 나머지 3개 구역을 가만히 보니까, 유다인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거기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네로 황제가 로마 시내 화제의 주범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누명을 씌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 인육을 먹고, 사람 피도 마시는 미친 사람들이라고 소문도 내고, 그 광신 집단이 홧김에 로마 시내에 불을 질렀다고 소문을 냅니다.

그때 아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잡혀가 죽어요. 네로 황제가 참 잔인했다고 해요.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고, 심지어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기도 하고, 굶주린 사자 우리에 던져 넣기도 해요. 이때 베드로 사도가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베드로 사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당합니다.

몸에 기름을 바르고 불을 붙여 태워 죽이기도 하고, 콜로세움 경기장에 맹수들을 풀어놓고, 거기에 그리스도인들을 집어 넣습니다. 도망다니고 싸우다 잡혀 먹게 하고, 그걸 또 구경을 하면서 즐기죠. 검투사들과 싸우다 죽게 하고. 

그렇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잡혀서 처참하게 죽습니다. 이런 박해가 장장 250년이나 계속되요. 그리스도를 믿으면 잡혀가서 죽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박해를 당하면 당할수록 신앙심이 더 강해지는 거예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겁니다.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면, 그 죽음을 통해서 더 강한 믿음이 생겨요. 

그리스도인들이 처참한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고 장엄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 보는 사람들이 더 감동을 받고, 충격을 받죠. 

감옥에 보내면, 감옥 안에서 복음을 전해요. 그러니까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전부 신자가 되요. 콜로세움 경기장에 넣고 사나운 짐승들과 싸우게 해도, 정말 장렬하게 죽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구경온 사람들이 더 감동을 받습니다. 화영을 시켜도 눈도 꿈쩍 안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오히려 당당하게 소리를 쳐요. 

도대체 신앙이 무엇이길래, 그리스도가 누구이길래 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강한 믿음을 갖는 것인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킵니다. 

박해가 가장 심했던 때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였는데, 약 5년 사이에 3500명이 순교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아무리 박해가 심해도 신앙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몰래 지하 무덤, ‘카타콤바’에 숨어서 미사를 봉헌하고, 집집마다 비밀리에 숨어서 신앙 생활을 이어 갑니다. 

그때 그리스도인들끼리 몰래 사용했던 표시가 바로 ‘십자가’ 예요. 몰래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징표로 사용합니다. 작은 ‘물고기’ 모양을 그려놓고 그리스도인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해요. 

고대 그리스어로 ‘물고기’가 ‘익투스’인데, 이 단어에는 엄청난 신앙 고백 내용이 숨겨져 있습니다. ‘익투스’의 머리 글자들을 따로 모아 보면,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시다”는 뜻이 되요. 이렇게 비밀리에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냅니다. 우리가 지금 믿는 신앙이 이렇게 전해져 내려 온 겁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가 옵니다. 313년의 일이죠. 그리스도교 역사 뿐만이 아니라 세계 역사에 획을 긋는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해요. 황제가 칙령을 발표하죠. 이 칙령을 통해서 그리스도교를 믿어도 좋다는 신앙의 자유가 온 로마 제국에 선포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밀라노 칙령’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가 성녀 헬레나입니다. 콘스탄티누스가 황제가 되기 전에, 장군이었을 때, 전쟁에 나가기 전날 밤에 꿈을 꿉니다. 옷과 방패에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두 앞글자인 ‘XP’ 를 새기고 전쟁에 나가면 무조건 승리할 거라는 꿈이었어요. 

꿈의 계시대로 했더니, 참전하는 모든 전쟁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 후에, 황제가 되면서 어머니의 권유로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합니다. 황제가 신자가 되었으니, 당연히 종교의 자유가 선언이 되는 거죠. 이렇게 해서, 길고 힘들었던 박해의 시대가 끝이 납니다. 이제는 모든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를 합법적으로 믿게 된 거예요. 

더 나가서, 약 80년 쯤 지나서, 391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아예 로마의 국교로 정해 버립니다. 모든 국민들은 다른 종교를 믿어서는 안되고, 무조건 그리스도교만 믿어야 한다고 선포를 하는 겁니다. 엄청난 반전이죠. 

250년 정도를 박해를 받다가, 이제는 완전히 로마 제국의 국교로 승격을 해요. 박해 받던 종교가 이제는 오히려 다른 종교를 박해하는 입장에 선 겁니다. 

당시 로마 제국 국민들의 약 80%정도가 그리스도교 신자였대요. 이때부터는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유다인들과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 이방인들을 엄청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완전 전세가 역전이 된거죠. 

박해 시대가 끝나고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마음껏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복음이 막 퍼져 나갑니다. 그리스도교의 전성기예요. 

보란듯이 교회 건물을 짓고, 공개적으로 미사를 봉헌합니다. 교회 재산이 인정되고, 황제와 국가가 나서서 교회를 지원해요. 그리고, 일요일을 주일로 정하고, 국가 공휴일로 제정합니다. 이때부터 주일날 미사를 하는 거예요. 

교회가 엄청나게 성장하고, 엄청난 권력과 부를 누리게 됩니다. 신자들도 급격하게 늘어나죠. 성직자들도 권력과 부를 축적합니다. 급기야 교회가 국가 권력을 감독하고 관리하는 권한까지 갖게 되요. 

귀족들과 영향력 있는 사람들, 지역 유지들이 모두 신자가 됩니다. 황제도 즉위식에서 교황이나 주교의 축성을 받아야 하고, 중요한 정치적인 문제가 생기면, 성직자들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귀족이나 정치인들보다 교황과 주교들, 사제들이 더 높은 권력을 쥐고, 정치를 좌지우지 하고,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되면서, 교회는 걷잡을 수 없이 타락의 길로 빠져듭니다. 

박해가 끝나고, 종교의 자유가 선언되고,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교회의 눈부신 성장이 사실은 교회가 타락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요. 신앙이 순수함을 서서히 잃기 시작하는 거죠.

성직 매매가 이루어집니다. 사제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니, 돈 많은 귀족들이 사제직을 돈으로 사게 되는 부정을 저질러요. 또 돈 많은 귀족들은 사제들을 개인적으로 고용합니다. 개인 집에 상주하면서 특정 가문을 위해서 미사하고 기도 하도록 돈을 주고 사제를 고용해요. 죄를 면해주고 천국을 보장해주는 댓가로 돈을 받고 ‘면죄부’를 만들어 팝니다. 

돈과 권력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영성과 신앙은 완전히 퇴색해 버립니다. 이런 제국 교회의 타락한 모습을 보고, 교회에 환멸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서 세상을 등지고 사막으로 들어가는 수도자들이 생겨나요. 

사막의 수도자들, 사막의 은수자들, 사막의 수도승들이 생깁니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오직 기도와 고행만 하고 사는 거예요. ‘사막의 교부’라고 부르는 안토니오 성인이 대표적입니다. 세상을 떠나서 사막이나 산속에서 혼자 기도하고 혼자 고행하는 삶을 살아요. 

그런데, 혼자 수도생활을 사는 것이 쉽지 않죠. 실패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고,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게 됩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살면서 수도생활을 합니다. 이렇게 수도원이 설립이 되고, 이것이 수도원 운동의 시발점이 됩니다. 

박해 시기가 끝나고 교회가 제국의 공식 국교가 된 이후, 약 200년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수도원이 생겨납니다. 

수도회가 점점 커지고 많이 생기다 보니, 각 수도회는 운영과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규칙들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중 6세기 경에 만들어진 베네딕토 수도회 규칙서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고, 이 규칙서를 근간으로 다른 여러 수도회들도 각자의 규칙서와 규정집을 만들게 됩니다. 

교회가 워낙 돈과 권력으로 타락해 가니까, 수도원은 가난하고 정결하게 살기 위한 규칙들을 만듭니다.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사는 방식도 제각각이예요. 그래서 수도원장의 말에 무조건 순명해야 하는 규칙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현재까지 계속 전해지는 ‘청빈’, ‘순명,’ ‘정결’ 수도 서원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수도원 중에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수도원도 많아요. 프란치스코 수도회, 도미니코 수도회, 베네딕토 수도회 등등. 

유명한 수도원들은 수 백년 동안 혹은 천년 넘게 그 전통을 유지합니다. 이 수도원들은 세속화 되고 타락해가는 교회를 순수한 신앙으로 지켜온 교회의 심장 역할을 합니다. 

국가 권력과 막강한 부를 등에 업고 팽창해가는 교회는 편안하고 안락한 신앙 생활을 이어가는 반면, 온갖 부정과 부패에 물들게 됩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신앙을 타락하게 만드는 역사를 우리는 자주 보게 됩니다. 

고난과 역경이 많을수록 더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심이 깊어져요. 반면에, 편안하고 안락한 시기에는 오히려 신앙심이 약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인간 역사에 끊임 없이 함께 하시면서, 인간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인간과 교회의 타락과 회개, 쇄신과 성장, 그리고 추락과 구원을 거듭해가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습니다.


요 약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되된 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주변 인근 지역의 헬레니즘 문화로 퍼져나가면서 급속도로 성장한다. 

그리스도의 ‘아가페’적인 사랑,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신적인 사랑’은 헬레니즘 문화를 강타하는 새로운 사상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시기에 바오로 사도는 안티오키아, 에페소, 고린토, 필립비, 데살로니카, 그리고 로마까지 방대한 지역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한다.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형태와 제도를 확립하고 성장하기 시작하지만, 로마 제국으로부터는 엄청난 박해를 받는다.

네로 황제 때부터 시작된 박해는 250여년 동안 지속되면서 수많은 순교자들을 낳게 된다. 특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박해가 가장 심했었는데, 5년 사이 약 3500명이 순교를 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엄청난 박해가 계속되어도 신앙은 계속 성장해 간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어머니 헬레나 성녀의 권유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하면서, ‘밀라노 칙령’을 통해서 신앙의 자유가 온 로마 제국에 선포된다.

39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정한다. 당시 로마 제국 국민들의 약 80%정도가 그리스도교 신자였다고 전해진다.

박해 시대가 끝나고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교회는 엄청난 성장을 하고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교회는 황제와 국가의 지원 속에서 엄청난 권력과 부를 누리게 된다. 이것이 교회가 타락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고 만다.

성직 매매, 성직자의 사적 고용, 면죄부 판매 등 돈과 권력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영성과 신앙은 완전히 퇴색해 버린다.   

제국 교회의 타락한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 세상을 등지고 사막으로 들어가는 수도자들이 생겨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수도 공동체를 설립하는 ‘수도원 운동’이 시작된다. 

수도회의 운영과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여러 규칙서들이 발간되고, 대표적인 것이 6세기 경에 만들어진 ‘베네딕토 수도회 규칙서’이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도미니코 수도회, 베네딕토 수도회 등 오랜 전통의 수도원들이 설립되고, 이런 수도원들은 세속화되고 타락해가는 교회를 순수한 신앙으로 지켜나가는 교회의 심장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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